1. 폭력의 미학
영화감독인 박찬욱의 영화는 유독 폭력적인 영화가 많습니다. 복수는 나의 것, 올드보이, 친절한 영자씨 등 복수시리즈 3부작을 필두로 공동경비구역 JSA, 박쥐, 아가씨에 이르기까지. 감독은 아니지만 제작을 맡았던 설국열차에서도 박찬욱의 씬이라고 할만한 열차 결투 씬이 등장합니다. 이러한 폭력성은 외국인들이 보기에 한국영화의 독특함 혹은 특별함으로 간주되기도 합니다. 박찬욱 감독은 가난한 자들이 폭력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언급한 바 있습니다.
Q : 이 영화(쓰리 몬스터, 2004)는 프로렐타리아의 피 빠는 부르조아의 이야기인가? 선과 악의 문제를 다룬 것인가?
A : 이 스토리를 만들 때 제일 처음 떠올랐던 경험이 있는데 < JSA>> 가 흥행한 직후 여기저기서 초청이 많았다. 그중에 거절할 수 없었던 조찬모임이 있었는데 ' 21세기를 준비하는 어쩌구 모임 '이었다. 재벌 2세나 교수, 의사 등 나이가 나보다는 조금 어린 친구들이 모여 있는 모임이라 가긴 가면서도 밥맛이라고 생각하고 갔는데 다들 매너좋고 겸손하고 지적이고 ...... 선입견이 완전히 무너졌다. 사람이 삐딱하다 보니 그대로 받아들이면 될텐데 좋은 사람이라는 호감보다는 다 가진 놈들이 착하기까지 하구나 싶어 화가 나고 슬펐다. 이 사람들은 맨손으로 뭘 한게 아니라 이미 다 부자들이고 부를 세습한 이들이라 뭐 하나 부족함이 없어서 성격이 나빠질 일이 뭐있냐, 이전엔 천민자본주의가 있었지만 그들의 2,3세는 상류사회 환경 속에서 성장해서 나쁜 것을 할 필요가 없다. 그와 반대로 가난뱅이들은 욕망이 많은데 채워지지 않으니 삐뚤어질 수 밖에 없다. 미덕이 세습된다는 것. 그런 식으로 계급이 정착되고 벗어나기 어려워 지는 것이다. 개천에서 용 나듯이 그래봐야 상류사회의 매너나 교양을 얻을 수는 없다. 그건 나중에 다뤄봐야 겠다, ' 너무 착해 미움받는 사람 ' 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박찬욱 감독).
[출처] https://blog.naver.com/fanglobe/221448066427
2. "그냥 알아서 공정하게 해 주겠지"가 안 먹히는 사회
이렇듯 가난한 자들이 폭력적이거나 거칠어지는 이유는 그냥 점잖게 이야기해서는 그들의 이야기에 누구도 귀 기울여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냥 알아서 공정하게 해 주겠지 생각하면 그 무엇도 이루어지지 않고, 반대로 불만이나 불공정한 일에 대해 격렬하고 거칠게 이야기해야 그제야 시스템이 작동합니다. 사실 공정함과 상식이 통하는 사회라면 목소리가 크든 작든 그게 맞는 이야기라면 메아리를 울릴 수 있어야 한다. 한국 사회만 그런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현재 내가 속한 조직 혹은 사회는 아직 그 수준을 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3. 착한 사람이 죽어나는 사회
우리는 어릴 때부터 착하고 정직하게 살 것을 종용받았습니다. 사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추구해야 할 가치이고 신뢰 사회를 구축하는데 정말 중요한 교육의 근간입니다. 하지만 아이들의 성향이 각자가 너무 다르기 때문에 동일한 잣대에서 무조건 착하라 정직하라 교육하면 원래 착하고 정직한 아이들은 피해를 입게 됩니다. 접시 위에 과자를 먹지 말라고 하면 그 말을 지키는 아이가 있고 그렇지 않은 아이가 있습니다. 공정한 관찰자가 있다면 말을 지킨 아이를 칭찬해주고 지키지 않은 아이를 꾸짖겠지만 실제로 아이들을 24시간 살필 수 있는 공정한 관찰자 따위는 없다. 결국 과자를 못 먹은 아이만 배가 고플 뿐입니다. 교실에서 문제아들은 오히려 교사들의 관심 어린 지도를 받지만 그리 뛰어나지 않지만 조용하게 생활하는 모범생은 아무런 관심과 지도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른의 경우도 실상 너무 정직하고 착하면 남들에게 이용만 당하고 피해를 보기 일쑤입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적당히 착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들어가기 시작합니다. 물론 예외가 있습니다. 힘이 세고 강한 사람이 착하기까지 하다면 세상이 존경할 것입니다. 하지만 약자이면서 착한 사람이 있다면 세상은 그를 '순진하다'라는 표현으로 바꾸고 신기하게 생각하거나 괴롭히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만약 당신이 천성적으로 착하게 태어나서 착하고 정직하게 살고 싶다면 부디 성공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렇지 못하다면 이 거칠고 거친 세상에서 수없이 피해를 보고 상처를 입으며 사회적 약자로서의 슬픔을 느껴야 할 것입니다. 당신의 정직하고 작은 소리가 세상을 더 아름답게 바꾸려면 일단은 거칠고도 격렬하게 이 사회의 위층 혹은 머리칸으로 올라가야 할 것입니다. 아니면 반대로 이미 당신이 나름 위쪽 칸에 도달한 사람이라면 모드 전환을 좀 해야 할 것입니다. 이쪽은 룰이 달라져서 과거의 편리하지만 옳지 못한 습관을 버리지 못하면 다시 당신을 꼬리칸으로 보내려고 난리를 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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