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눈물 젖은 빵을 먹어야 하나
대개 세상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계기는 좌절을 경험하면서부터입니다. 그 좌절은 시험 성적일 수도 있고 사랑일 수도 있으며 꿈 혹은 우정에 대한 실망 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좌절하는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깨달음을 얻고 방향을 선회하는 계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좌절이 없었던 사람은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고 엘리트 계층에 속하는 소위 '엄친아' 들이겠지만, 큰 좌절을 몰랐던 사람은 어렵고 힘든 사람의 고충을 이해하지 못하여 이기적이고 독선적인 사람이 되기도 합니다. 이를테면 어린 나이에 고시를 패스한 우병우 같은 사람들이 타인의 삶을 얼마나 이해할까요? 사회 고위층들이 루저들의 삶의 애환을 얼마나 이해할까요? 만약 우병우 같은 사람들이 좌절과 실패를 많이 경험했다면 사회적 약자들의 편에 섰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만약 어린 시절을 평탄하게 보냈다면 이 시기에는 세상 모든 것이 아름다워 보이게 됩니다. 반면에 어린 시절이 평탄하지 않았다면 일찍 좌절을 맛 본 케이스일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어린 시절부터 좌절을 맛보았다면 좌절에 길들여지는 것 만은 피해야 합니다. 학습된 무기력 같은 것은 나의 가능성을 뿌리부터 짓밟습니다. "나는 해도 안될 거야. 나는 원래 그래." 같은 생각을 하게 되니까 그것은 피해야 합니다.
극복할 수 없는 좌절도 가급적이면 피하는 것이 낫습니다. 모험은 좋지만 죽거나 불구가 되면 무의미합니다. 마찬가지로 치명적인 좌절은 인생에 큰 상처가 되고 앞으로 나가기보다 뒤를 돌아보며 평생 후회하게 만드는 계기를 낳습니다. 그런데 그게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2. 내가 당하는 고통의 의미
삶이 정말 괴롭고 고통스럽다면 사실은 신이 당신을 정말 사랑한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조금 편합니다. 그게 무슨 개소리냐고, 신이 사디스트냐고, 나는 사랑 덜 받아도 되니 그냥 금수저로 해 주면 안 되냐고 할 수도 있고 나는 신을 믿지 않는다고 말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표현을 바꾸어서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어쨌거나 빵을 먹으려면 걸어가야 한다고요. 그리고 내가 아기라면 일단 수없이 넘어져봐야 걸을 수 있고, 그리고 빵을 먹고 나더라도 생이 이어진다면 또 먹어야 한다고요. 결국 나중에는 빵을 만들 수 있어야 하고, 빵을 만들기 위해 밀을 재배 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인생은 눈물 젖은 빵을 먹기 위해 고생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어쨌거나 신은 사랑하는 자에게 편안함과 즐거움만 주는 것은 아닙니다. 맥아더 장군은 자신의 아들을 위한 기도제목으로 "자식에게 역경을 주되 역경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달라"라고 기도했습니다.(불행히도 그 아들이 그렇게 반듯하게 잘되지는 않은 것 같지만.) 세상에는 행복하고 즐거워 보이는 지역과 국가도 일부 있지만 거기에도 여전히 어려운 사람들이 살고 있고, 세계 전체를 놓고 본다면 분명 불행과 고통을 겪는 지역과 국가도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한 사람의 인생을 놓고 보아도 평생 즐겁고 기쁜 일만 가득하지는 않습니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라도 한다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고, 소위 영재라고 불리던 아이들이 커서도 똑같이 천재가 아니라면 오히려 불행한 삶을 살기도 합니다. 누구나 로또에 당첨되기를 원하지만 막상 로또에 당첨된 사람 중에는 쫄딱 망해서 후회하는 사람도 생각보다 많이 있으며(다들 나는 아닐 거라고 굳게 믿지만), 어설픈 성공을 경계하라는 말도 있습니다. 만약 현재 자신이 가지고 있는 행복이 우연히, 행운으로 주어진 것에 불과하다면 그것은 내가 자력으로 획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컨트롤할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한번 잃어버리고 나면 다시 회복할 수 없게 되어버립니다.
사람의 팔은 안으로 굽습니다. 여자는 여자 편, 남자는 남자 편, 가족은 가족 편, 지역 편, 국가 편. 요즘 같은 때는 특히나 더한 것 같습니다. 고통을 경험하지 않은 자는 고통 당하는 자들의 처지를 절대로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선한 이의 고통으로 흘리는 눈물은 보석이 되어 비슷한 처지의 많은 이들을 행복하게 할 수 있습니다. 무슨 황금알을 낳는 거위도 아니고 무슨 비유가 그 따위냐고 하겠지만, 필요가 발명을 낳습니다. 그래서 나는 똑똑하고 잘난 놈들일수록 일부러 더 열악한 곳에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BTS도 군대를 가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열악한 분야가 그들의 불편함 또는 고통 때문에 어느 순간엔가 개선이 되게 되어 있고 덕분에 사회적 약자들도 혜택을 얻을 수 있게 됩니다.
3. 그런데 이게 그냥 끝이면 어쩌지 하는 생각
카카오톡 프로필에 "내 최고의 날은 아직 오지 않았다"라는 글귀를 올려놓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말이 맞을 수도 아닐 수도 있지만(KFC 할아버지 할랜드 샌더스는 65세에 가게 말아먹고 창업했지 않은가?) 그 의미를 생각해 보면 "지금껏 실컷 고생해도 참고 견디며 살아왔는데 나이만 먹어가고 좋은 날이 과연 올까 싶은 것"입니다. "그래 잘난 인간들이야 똥통에 처박아 놔도 기어올라와서 기어코 성공하겠지. 그런데 나는 그냥 이게 끝이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문득문득 고개를 쳐듭니다. 어린 시절 초등학교 다닐 때 어린이날마다 누가 찾아와서 빵과 우유를 주면서 "여기서 누가 대통령 될지 국회위원 될지 축구선수가 될지 모른다. 열심히 해라" 했고 나도 그럴 때마다 괜히 우쭐해져서 주변을 쓱쓱 돌아보곤 하였지만 사실 내가 다닌 학교는 반이 4개 뿐인 작은 시골 학교였을 뿐이고, 같이 학교를 다닌 친구 중에 대통령은커녕 가수도, 국회의원도 축구선수도 없습니다. 나이는 먹고 흰머리도 하나 둘 생기고 있는데 잘 될 거라는 기대는 그저 막연할 뿐입니다.
무협소설의 주인공이 천년 설산을 먹고 은거기인을 만나 20년간 천신만고 끝에 무공을 대성하고 강호에 출도 했는데 실수로 벼랑에서 떨어져 죽어버렸습니다. 현실에서는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이지만 보통은 그런 소설을 쓰지 않습니다. 재미도 없고 누구도 읽지 않을게 뻔하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자기 인생 소설을 쓰는 작가라는 입장에서 보면 "OO은 개고생 했지만 결국 평범한 사람이 되어 생을 마감했습니다" 같은 스토리는 아마 상상해보지 않은, 아니 상상하고 싶지도 않은 그런 이야기였을 것입니다. 상상했던 삶은 사실 광고에나 나올 것 같은 행복한 가정에 드라마 재벌가에 나오는 정원 딸린 넓은 집과 차, 비행기 비즈니스석에서 스튜어디스에게 대접받으며 여행 가는 그런 삶이었는데! 그래서 사람들이 영화를 보고, 인스타그램을 올리고 그러는 것이겠죠. 아직 내 꿈의 유효기간이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내 추례한 모습은 최대한 감추고 멋지고 탱탱한 모습을 보여주려 애쓰는 것입니다. 사실 일부 SNS들은 그런 욕구를 가진 사람들이 서로 잘난 겉모습만 보여주는 각축장이 되어버렸습니다.
4. 이쯤에서 필요한 각색
그렇다고 새 소설을 쓰자니 지금까지 해 온 것이 아깝고, 판을 뒤집는다 한들 지금까지 한 것 이상의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사실 어쨌거나 지금까지 나름의 최선을 다해 온 것이니까요). 그렇다면 약간의 각색을 통해 커다란 반전은 있지 않더라도 아름다운 마무리와 더불어 후속 편 예고 정도는 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가진 스토리 중 가장 격렬했던 실패의 기억들을 나열하고 서로 연결해서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단 그 순간만큼은 욕심을 좀 버리고 순수하게 과거지향적으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내가 당한 좌절, 고통, 어려움이 현재의 내 모습을 만들기까지 어떤 역할을 했고 무슨 의미를 가지는지를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합니다. 그게 끝나고 나면 거기에 맞추어서 다시 내 미래를 그려보아야 합니다. 과거의 실패도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원동력이므로 숨기기보다 사랑해야 하는 게 맞고, 과거의 실패는 내게 지금이 전환이 필요한 시점인지, 과감하게 무언가 해야만 되는 것인지를 알게 해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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